붕대 감기

🔖 너는 네가 버스 바깥에 있다고 생각하지만, 나는 우리 모두가 버스 안에 있다고 믿어. 우린 결국 같이 가야 하고 서로를 도와야 해. 그래서 자꾸 하게 되는 것 같아. 남자들에게는 하지 않은 기대를.


🔖 작가의 말

지난 몇 년간의 설렘과 혼란과 벅참과 아쉬움을 떠올려본다. 누군가의 눈앞에서 문을 꽝 닫아버린 일도 있었고, 내 눈앞에서 문이 꽝 닫힌 일도 있었다. 내 잘못이 아닌 일에 죄책감을 느끼기도, 강요당한 죄책감에 화가 나기도 했다. 섣부른 판단과 평가가 지긋지긋했지만 언제까지나 판단을 유보하는 태도가 한없이 비겁해 보이기도 했다.

(...)

변화는 꼭 필요하고 변화를 말하는 목소리가 다른 모든 목소리에 대한 부정이 아님을 알면서도, 우리는 너무 약해서 종종 오해하고 잘못 말하고 상처를 받는다. 목소리 안에 있을 땐 동참해주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외로웠고 바깥에 있을 땐 말할 수 없는 게 많아서 외로웠다.

마음을 끝까지 열어 보이는 일은 사실 그다지 아름답지도 않고 무참하고 누추한 결과를 가져올 때가 더 많지만, 실망 뒤에 더 단단해지는 신뢰를 지켜본 일도, 끝까지 헤아리려 애쓰는 마음을 받아본 일도 있는 나는 다름을 알면서도 이어지는 관계의 꿈을 버릴 수는 없는 것 같다. 꿈에도 서로를 사랑할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 사람들 역시 은밀히 이어져 모르는 사이에 서로를 돕고 있음을, 돕지 않을 수 없음을 이제는 알기 때문에.